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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를 반대하는 자들

(사도행전 19:21-41)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

21.○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23.○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26.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7.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30.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32.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33.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34.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35.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36.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37.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38.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39.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40.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41.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2년 3개월 동안 바울은 에베소에 머물며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강론을 하자,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에베소에 사는 사람들이 주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또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책을 모아가지고 와서 사람들 앞에서 불사르게 됩니다. 


이처럼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사단은 가만히 이러한 역사 속에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반대하는 자들을 일으켜 이 역사를 저지시키려 합니다. 

그래서 데메드리오라고 하는 우상제작자가 자신의 수입이 줄어들자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모아 선동하여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그렇다면 이 우상제작자들이 소요를 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그럴듯한 종교적인 이유를 대고 있지만, 궁극적인 소요의 원인은 자신들의 경제적인 손해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돈(맘몬)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을 넘어뜨리는 가장 강력한 세력입니다.


이 무지한 세력들은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연극장으로 끌고가 두 시간 이상 소란을 피웁니다.

하지만 결국 이 소동은 혐의가 없는 것으로 끝나고, 흐지부지 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때, 내가 은혜받고 뭔가 이제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사단도 동일하게 힘을 써 우리를 넘어뜨리려 합니다.

그래서 돈, 성, 명예 등 인간이 본능적인 욕구를 자극하고, 또 내가 가장 약한 그 부분을 자극하고 건들여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저지시키려 합니다.


이것은 어떤 인격적인 존재의 의도적인 저지 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도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마치 연극장 안에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소요를 일으키고 있지만 그 가운데 다수의 사람들이 왜 모였는지조차 모르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반대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무의식 중에 모인 그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모르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려운 것은, 영적인 민감함을 잃어버리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세계관과 상식대로 살아가면 성도라는 나도 연극장 안에서 왜 소리지르지는 이유도 모르고 소리지르는 사람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나타날 때 사단도 동일하게 역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더욱 더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연약함을 주님 앞에 아뢰고, 그것으로 인해 넘어지지 않게 하소서!

깨어서 주님의 뜻, 주님의 일하심이 어떠 한지를 깨닫고, 내가 주님의 일하심에 장애물이 되지 않고,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wDx2niL2j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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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선교(사도행전 18:1-11)

말씀 나눔 2018. 2. 15.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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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선교

(사도행전 18:1-11)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하다]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아테네에서 고린도로 이동을 한 후 바울은 그곳에서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본도 지방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들에게 로마를 떠나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고린도로 옮겨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과 아굴라는 천막을 만드는 직업이 같았기 때문에 함께 묵으면서 같이 일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바울은 안식일 마다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헬라인과 함께 토론하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때마침 마케도니아에서 실라와 디모데가 내려와 합류하게 되었고, 이제 바울은 말씀을 전하는 일에만 힘썼습니다.

고린도에 와서 바울은 인간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동역자(아굴라 브리스길라)을 만나고, 또 여러 이유로 잠시 떨어지게 되었던 선교팀(실라 디모데)을 만나므로 더욱 왕성하게 사역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복음을 전해도 그 반응은 역시 두 가지였습니다.

믿거나 혹은 안 믿거나!

바울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전하자 유대인들은 바울에게 대들며 욕을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옷에서 먼지를 털고 나와 회당 옆에 위치한 디도 유스도의 집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회당장 그리스보와 그의 온 집안 식구가 주님을 믿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주님을 만납니다.

어느 날 밤에 환상 중에 주님은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조용히 있지 말고 계속해서 말해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내 백성이 이 도시에 많다. 그러므로 아무도 너를 공격하거나 해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머물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역은 한 편으로는 두렵고,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물리적으로 심적으로 강한 저항, 또는 박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것임에도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함께하는 동역자들이 많습니다. 비록 힘든 일이 눈 앞에 있어도 함께 할 수 있는 동지가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됩니다.

바울도 열심을 내어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문득 함께하며 사랑과 정을 나눌 수 있었던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하나님께서 혼자 있던 바울에게 이들 부부를 만나게 섭리하셨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그 고된 여정 가운데 함께 했던 실라와 디모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복음 사역에 어떤 사람입니까?

바울과 같이 힘을 다해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는 사람? 또는 함께 쉼이 되어주고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아굴라 부부 같은 사람? 혹은 함께 복음 사역에 일선에도 도움을 주는 실라와 디모데?

 

그리고

대들며 욕을 하는 사람?....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 가장 큰 위로와 힘은 바로 주님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임마누엘의 위로가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을 것입니다.

 

복음은 항상 거절과 환영을 동시에 불러옵니다. 우리 눈앞에 환영은 달콤하지만 하지만 거절을 그 환영을 넘어 너무 커 보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거절에 넘어지지 말고, 환영을 기대하며 나아갑시다!

 

세상을 보면 두려워할 이유, 침묵해야 할 이유가 많지만,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았을 땐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 그리고 말해야 할 이유가 분명해 집니다.

 

오늘 하루 복음 안에 거하며, 복음을 흘려보내는 삶! 전하는 삶을 삽시다.

무엇보다 믿지 않는 불신 가정을 만나는 이 연휴,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함께 하는 동역자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yms04120&logNo=220208456732&jumpingVid=E965B286ABC651F658C29D3B010BDC48229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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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에서의 전도(사도행전 17:16-36)

말씀 나눔 2018. 2. 14.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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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에서의 전도

(사도행전 17:16-34)

 

[바울이 아덴에서 전도하다]

 

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베뢰아까지 쫓아와 바울의 전도사역을 방해하는 데살로니가 폭도들을 피해 바울은 먼저 아덴으로 건너와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게 됩니다.

그러나 우상숭배가 가득한 아덴(아테네)을 보며 대단히 화가 났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분노라 할 수 있고, 바울의 즉시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회대에서는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헬라인들에게 그리고 광장에서는 만나는 사람들과 토론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에피쿠로스 철학자들과 스토아 철학자들과 바울이 논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어떤 지적 호기심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붙잡아 아레오바고에 있는 시의회로 데려가 바울이 전하는 말을 공식적으로 듣기 원했습니다. 하지만 이 철학자들은 성령에 의해 복음을 받아드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어떤 새로운 지식을 듣고 싶은 호기심 때문에 이와 같은 행동을 한 것입니다.

 

바울은 시의회 앞에 서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설교의 대략적인 내용은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이방신들처럼 인간의 손길이 필요한 분이 아니고, 아무도 핑계할 수 없도록 창조 세계와 역사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음을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정하신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하며, 우상숭배에 빠진 아테네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바울은 도시 안에 숭상숭배가 만연해 있는 모습을 보고 거룩한 분노를 느껴 자신이 할 수 있는대로 열심을 다해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내 주변에 아직도 복음이 닿지 않아 여전히 미신과 우상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하며,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을 증거하며 주님 앞에 돌아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아테네 사람들에게 복음은 새로운 정보요, 그들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주는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을 뿌려도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주시지 않으면 결국 복음은 돼지목에 진주가 될 뿐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무엇보다 더 많은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

첨단 과학 속에도 조잡한 미신에 마음을 빼앗겨 사는 사람들, 자기 자신을 신으로 놓고 자신의 능력과 경험을 의지하는 사람들, 그리고 여전히 잘못된 우상에 빠져 하나님이 받으실 경배를 사람이 만든 그 어떤 것에다가 돌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바울이 품었던 거룩한 분노, 복음이 빠진 세상에 대한 연민을 갖고 그들에게 복음을 증겋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기도로 준비케 하시고,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복음에 바르게 반응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BudXdTqml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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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에서 아덴까지

(사도행전 17:1-15)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하다]
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베뢰아 사람들이 말씀을 받다]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오늘 본문에는 두 부류의 열심이 나옵니다.

하나는 복음을 대적하는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의 열심과 또 하나는 복음을 연구하는 베뢰아 사람들의 열심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습관처럼 바울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삼 주에 걸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구약성경에 예언한 메시아의 수난을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적용해서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증거했습니다.

이러한 복음의 선포를 통해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따랐습니다.

그러자 시기심이 일어난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시장에서 불량배들을 모아 폭동을 일으켜 도시를 혼란에 빠지게 했습니다.

심지어 바울 일행이 몸을 피해 베뢰아로 이동 한 후 그곳에서 복음을 전해 많은 사람들이 믿자 100km 떨어진 베뢰아까지 쫓아가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소란을 피웠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이 유대인들을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들의 엄격한 종교적 훈련을 통해 성경을 암송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나타나 그 성경을 가지고 예언자들이 예언한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눈이 먼 그들은 그 성경의 메세지를 이해할 수 없었고, 믿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를 따르는 모습을 보고 시기심이 일어났습니다.

이들의 행동을 보면 무척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인, 즉 설령 타종교인들 조차 하지 않을 비윤리적이고 비겁한 행동을 합니다.

시장에서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도시를 혼란케 하고, 또 100km가 떨어진 베뢰아까지 쫓아가면서 복음을 대접하는 그들은 악령이 씌웠다고 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악독합니다.

 

반면에 베뢰아 사람들은 성경을 연구하는 열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11절을 보니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고상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로서 바울과 실라의 말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며, 바울이 전한 복음이 내용이 사실인지를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연구했습니다.

복음은 우리가 연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시작되지만, 믿는다는 것과 아는 것은 하나입니다.

복음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기에 우리가 그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될 때 더 풍성한 은혜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악한 영에 씌여 복음을 대적한 것처럼, 성령께서 이들의 마음을 열어주시지 않으면 결코 이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연구하고, 암송한다고 해도 성령께서 그 말씀을 믿게 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참된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4절 말씀과 12절 말씀에서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한 후에 나타난 반응의 묘사입니다.

4절을 보면 "따랐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이 말씀의 의미가 불신앙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겠지만, 12절에서는 분명히 "믿었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이 두 가지의 표현이 신앙을 의미하는 같은 내용일 수도 있고, 또는 신앙 뉘앙스의 정도를 표현하는 다른 내용의 단어일 수도 있는데 저는 따른다는 것보다는 믿었다는 것이 더 많은, 그리고 더 온전한 상태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완강하게 거부하는 지역이었던 데살로니가에서는 복음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지만, 그 따랐던 사람들 가운데 다시 불신과 유대교로 떨어진 사람들이 있었을 것 같고,

적극적으로 복음을 연구하는 베뢰아 지역에서는 정말 알곡과 같은 많은 신자들이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주님!

내 삶 속에서 나는 어떤 부류의 사람입니다.

적극적으로 복음을 대적하는 사람과 적극적으로 복음을 수용하는 사람!

혹은 적극적으로 복음에 무관심한 사람은 아닙니까? 내가 하는 일이 많고, 바빠서 복음은 2순위 아니 3순위로 밀려나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날마다 나의 마음을 좋은 땅과 같이 기경하여 하나님의 말씀 떨어질 때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또 그것을 상고하므로 참된 믿음, 순결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gfNH21Q9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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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가복음 13:32)

 

그 때, 즉 인류 마지막 날을 언급하면서 예수님은 그것이 알려지지 않은 날짜라는 것을 표현하시면서, 심지어 자신도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어떻게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자신이 다시 임할 그 때를 모를 수 있을까?

예수님이 인류 구원의 사명을 띠고 사람이 되셨을 때, 그는 스스로 온전히 낮아져 모든 권한을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셨다(빌 2:6-8). 따라서 재림의 시기에 관한 문제도 아버지의 뜻과 주권에 전적으로 순복하기로 하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주의 재림의 시기를 안다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두말할 필요없이 거짓 선지자이다.

(Q.A 성경 신약 p.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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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이 아닌 은혜로(사도행전 15:1-11)

말씀 나눔 2018. 2. 7. 10:58

http://www.su.or.kr/03bible/daily/qtView.do?qtType=QT1

 

율법이 아닌 은혜로

(사도행전 15:1-11)

 

[예루살렘 회의]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어떤 사람들이 유대에서 안디옥에 와서 "모세가 가르친 풍습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곧 할례 없이 믿음으로 구원에 동참하게 된 안디옥교회의 존재를 부정하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로인해 이같은 가르침을 베푼 유대파 신자들과 바울과 바나바로 대표되는 안디옥교회 신자들간의 격렬한 논쟁과 충돌이 발생하게 되었고, 결국 안디옥교회는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몇 사람을 예루살렘교회로 보내 사도들과 장로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지는 알아보게 했습니다.

 

바울과 그 일행은 안디옥교회의 전송을 받고 여행길을 떠나 베니게와 사마리아 지방을 거쳐 그곳에서도 형제들에게 이방인들이 주님께 돌아오게 된 간증을 하였고, 이제 사도들과 장로들의 환대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안디옥교회 일행의 보고 후에 예루살렘교회에서도 팽팽한 의견 대립이 일어났습니다.

바리새인 출신의 신자들은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왜 이들은 이와같은 말을 하는 것일까요?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듣고 믿었지만, 여전히 복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오랫동안 대대로 내려오던 유대인들의 전통(율법)과 복음의 혼동 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할례는 아브라함의 자손 즉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증표요, 또 시내산에서 내려주신 율법을 지켜야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많은 토론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과 같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를 주셨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고 그들의 믿음으로 구원해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어찌하여 우리 조상들이나 우리나 모두 질 수 없었던 짐을 이방인 신자들에게 지워서 하나님을 시험하려 하십니까?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주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율법을 지킴으로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데, 그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율법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지만, 한정적인 의미로 은혜가 오기 이전에 우리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님의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나타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은혜입니다.

내의 삶에 모든 것을 채워주심도 은혜이지만, 우리에게 제일 그리고 가장 큰 은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창세전부터 우리를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선택해 주신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주님!

도무지 지킬 수 없는 율법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어떤 행위를 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율법주의자와 같은 생각, 바리새인 신자와 같은 습성이 내 삶에 남아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성령을 통해 나를 만져주셔서 주님의 은혜만이 나를 구원하고 새롭게 함을 인정하게 하시고, 그 은혜를 노래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MqnCa4yw8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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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으로의 귀환(사도행전 14:19-28)

말씀 나눔 2018. 2. 6. 07:44

http://www.su.or.kr/03bible/daily/qtView.do?qtType=QT1

 

안디옥으로의 귀환

(사도행전 14:19-28)

 

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24.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25. 말씀을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26.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27.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28.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19절에 나오는 '무리', 그리고 11절에 나오는 '무리'

똑같이 루스드라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직전 이 무리들은 '나면서 부터 걷지 못하게 된 사람'이 일어나 걷게 되자, 바울과 바나바를 향해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고 호돌갑을 떨며 그들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으로부터 내려와서 선동시키자 돌을 던져 바울을 죽이려했습니다.

말씀을 듣지만, 그 말씀에 주목하지 못하고 나타나는 현상에 따라 신앙이 좌우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본문은 '무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말씀과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오감과 자신의 감정에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무리는 세상 속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도 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을 따르는 제자? 아니면 상황을 쫓는 무리? 

 

바울은 이러한 돌팔매질을 당하고서도 '일어나' 다시 복음 전도를 재개합니다.

자신이 목숨이 오가는 상황 속에서 조금도 개의치 않고, 자신을 향해 돌을 던졌던 사람들이 있는 그 지역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행동으로 많은 제자들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우리가 받게 되는 저항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회피할 때 우리는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용감하게 복음을 증거할 때 많은 열매를 얻게 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처럼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방문했던 도시들을 재방문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고, 또 그 나라의 백성으로 이 땅을 살아갈 때 제자들은 고난을 당할 것임을 다시 한번 증거한 후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복귀합니다.

 

주님!

무리 아닌 제자로서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내 안에 말씀과 성령으로 날마다 새롭게 하셔서, 내 오감과 내 경험을 의지하며 살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옵소서!

주님!

복음대로 살 때 우리가 겪게되는 삶의 저항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포기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용감하게 복음의 용사로 이 땅을 딛고 살게 하옵소서!

그래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으며 살게 하옵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kd-6LRiCpX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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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u.or.kr/03bible/daily/qtView.do?qtType=QT1

 

믿음의 주, 예수 그리스도

(사도행전 13:32-43)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35.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42.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43.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비디시아 안디옥에서 안식일날 회장에서 계속해서 바울은 말씀을 증거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바울은 예수님이 구약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메시야이고, 하나님은 예수님이 썩지 않고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성취하셨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이 진술하고 있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바울은 시편 2편에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너를 낳았다"라는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 시를 지은 다윗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성자에게 적용되는 말씀으로 삼위 가운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유일한 구약 본문입니다. 즉 영원 전에 선언된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신성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또 35절에서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라는 시편 16:10을 인용하고 있는데 썩지 않는 이유는 바로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예언을 했던 다윗조차 죽어 썩게 되었지만, 이 예언의 성취자이신 예수님은 죽지 않고 부활하셔서 썩음을 입지 않으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힘입어 우리는 죄사함을 입게 됩니다(38절).

 

그리고 죄가 사해질 뿐만 아니라 의롭다하심까지 입게 됩니다(39절).

 

이 약속의 말씀을 멸시하는 사람은 결국 마지막 심판 날에 놀라고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41절).

 

예수님을 단순히 윤리의 교사로 이해하여, 그의 삶을 통해 그리고 그의 가르침을 통해 고도의 선한 삶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예수님은 성자(聖子)가 아닌, 성자(聖者)일 뿐입니다.

모델과 모범이 될 수는 있지만, 신앙의 대상이요, 경배와 찬양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오늘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성경이 우리에게 묘사하고 있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요!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부활하신 메시야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의에 옷을 입혀주시는 신앙의 대상이십니다.

 

주님!

예수님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를 넘어 인격적인 앎(야다!)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가 내 입술의 노래가 되게 하옵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tq9OdF5tV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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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약속의 성취(사도행전 13:13-31)

말씀 나눔 2018. 2. 2. 10:43

http://www.su.or.kr/03bible/daily/qtView.do?qtType=QT1

 

예수, 약속의 성취

(사도행전 13:13-31)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전도하다]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18.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21.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24. 그가 오시기에 앞서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25.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26.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29.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30.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

 

바보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 지역의 버가로, 그리고 비디시아 안디옥까지 온 선교팀은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갔고, 말씀 낭독이 끝난 후 회당장들의 청함에 따라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바울은 단숨에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바울의 진술 속에서 지난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면, 광야에서도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도 끈질기게 하나님을 거절하고 배반했던 이스라엘 조상들과 신실하게 자신의 약속을 이뤄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단순한 인과율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수백번 심판을 받아 마땅한 민족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약속하신 것을 포기하지 않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함이 그 불신과 배반의 민족 속에서 메시야 예수를 탄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했고, 예언에 따라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했고,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하나님은 다시 예수님을 살리셔서 이제 수많은 증인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마다 자신들의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선지자들의 말)을 낭독하고 듣습니다. 하지만 정작 선지자들이 오시라고 예언한 예수님이 오셨음에도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고,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신자이고, 신자는 곧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입니다.

이러한 정체성 없이 종교행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복음의 핵심은 바로 예수님의 삶과, 예수님의 죽음과,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생명력 없이 그저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말씀을 낭독하고, 듣는 종교행위를 하는 종교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생명력 있는 복음을 가슴에 품고 언제 어디서든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복음의 핵심을 알고 믿게 하시고!

내 삶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종교행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신앙인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그래서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 속에서 생명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내 삶을 주장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QxpAcEW1j9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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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이방 선교사의 파송(사도행전 13:1-12)

말씀 나눔 2018. 2. 1. 07:26

http://www.su.or.kr/03bible/daily/qtView.do?qtType=QT1

 

첫 이방 선교사의 파송

(사도행전 13:1-12)

 

[바나바와 사울을 보내다]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바나바와 사울이 구브로에서 전도하다]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사도행전은 복음행전이고, 또 이 복음이 흘러가면서 생겨난 교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교회행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이 13장부터 시작되는 후반부는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복음의 중심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안디옥으로, 복음 전도자의 포커스가 베드로에서부터 바울로, 복음의 수혜자가 유대인에서부터 이방인으로, 복음 선포 지역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부터 지중해을 중심으로 한 지역으로 변화되는 기어 변속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사도행전의 2막을 안디옥교회를 중심으로 여셨고, 특별히 이방인들을 선교하기 위해 이방지역 출신인 바울(다소)과 바나바(구브로)를 선교사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안디옥교회는 어떤 교회였을까요? 분명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들(선지자와 교사)을 면면을 보면 인종과 출신 그리고 신분이 모두 달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보편성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 됩니다. 그들은 한 마음으로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에 순종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그리고 첫번째 사역지는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키프로스)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바울이 만나게 됩니다. 한 사람은 성령께서 세우신 이방인 선교사였고, 또 다른 바울은 전도여행 중에 만난(기록된) 최초의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의 회심을 이끕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계에 위협을 느낀 마술사 바예수는 이 사역에 방해를 끼칩니다. "바예수"란 이름은 "바"=아들, "예수"=구원자의 뜻으로 "구원자의 아들" 또는"구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는 구원의 장애물이 되고, 마귀의 아들 짓을 합니다.

 

교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보편성입니다. 복음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은 교회가 지향해야 할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입니다. 안디옥교회는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는, 그리고 성령의 말씀에 순종하는 건강한 교회였습니다. 결국 이 이방교회는 세계선교의 요람이 되어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가다보면 바울이 또 다른 (서기오) 바울을 만나는 것처럼, 운명적인(물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지요~) 만남을 갖게 됩니다. 이러할 때에 내가 언제든지 자연스럽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이름은 바예수, 즉 구원의 아들이었지만 본문 속에서 그는 악마의 아들이었습니다. 복음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고, 결국 어둠 속에 떨어지고 맙니다.

이름은 신자이지만, 교회의 사역을 방해하고, 신자들의 분란을 일으키는 악마의 아들이 있습니다.

나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하나님이 보셨을 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내가 누구인지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나님!

건강하게 살아있는 교회가 복음의 열매를, 주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교회라는 것을 다시 한번 보게 됩니다.

우리교회가 건강하게 하시고, 복음을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살아있는 교회 되게 하옵소서!

주님! 성도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언제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영적인 상태를 유지케 하시고, 나의 삶을 통해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신자라는 성도라는 이름에 걸맞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복음의 역사에 장애가 되지 않고, 디딤돌의 역할을 감당케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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